탈북자 교회의 ‘나팔수’

    매주 주일이 되면 나는 아주 특별한 이름표가 붙은 자리로 들어선다.

    내가 섬기는 탈북자 교회 찬양팀 자리, 그곳에 놓인 의자에는 우습게도

    ‘나팔수’라는 세 글자가 직관적이고 정겹게 붙어 있다.

    남들처럼 ‘트롬본 주자’ 같은 세련된 명칭 대신,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보았을 법한 ‘나팔수’라는 직함이라니. 교회에 가서 처음 그 이름표를 보았을 때는 피식 미소가 흘러나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소박한 이름이 주는 울림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찬양 시간이 시작되면 내 옆과 앞뒤로 동료 주자들이 자리를 잡는다. 경쾌한 리듬으로 회중의 마음을 두드리는 드럼, 잔잔하고 다정하게 멜로디를 감싸 안는 바이올린과 기타, 그리고 웅장하고 풍성한 음색으로 예배당 전체를 채우는 오르간까지.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 싱어롱(Sing-Along)을 리드할 준비를 마친다.

    드디어 싱어롱 시간이 되고, 기타의 첫 코드와 드럼의 힘찬 비트에 맞춰 성도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트롬본의 슬라이드를 당긴다.

    나팔관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묵직하고 울림 있는 금관의 소리가 예배당 공기를 뚫고 퍼져나간다. 트롬본은 테너의 음역이지만, 금관악기는 나 혼자밖에 없으므로 그냥 베이스 파트를 연주한다.

    그 찬양 소리에 맞춰 성도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종종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북녘 땅에서의 고단했던 기억, 그리운 고향과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눈물, 그리고 낯선 남한 사회에 정착하며 겪어야 했던 외로움과 불안함. 그들의 눈빛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응어리져 있다.

    하지만 바이올린의 다정한 멜로디와 내 ‘나팔’ 소리가 더해져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 보면, 성도들의 얼굴을 어둡게 덮고 있던 시름의 그늘이 거짓말처럼 차츰 걷혀간다.

    손을 들고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내 기쁨의 미소를 되찾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소리를 내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듯,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하나의 다정한 공동체를 이루어간다.

    오늘도 나는 ‘나팔수’라는 정겨운 이름을 품고 트롬본을 입에 대어 본다.

    이 웅장하고 따뜻한 나팔 소리가 막힌 마음의 국경을 허물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희망과 위로의 노래로 오래도록 울려 퍼지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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